내가 좋아하는 대모산의 오솔길
곳곳에 벤치는 물론이고
땀을 식힐 수 있는 작은 정자까지 있다.
졸졸 흐르는 시내가 모여 고인 곳엔
작은 연못도 이루어져 있고
까치들의 영역 싸움도 가끔 일어난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처럼 호젓하고 울창한 숲이 있어
갈때마다 깊은 숨을 편안히
들이숼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늘은 구름이 가득한 하늘,
여느 때처럼 오솔길로 들어섰으나
까치소리도 무언가 편안치 않은 듯 하더니
후드득 떨어지는 빗소리가 잎새를 치고
가느다란 빗방울들이 쏟아지는 소리가
쏴~ 하고 바람소리처럼 들린다.
가을의 초입에 들어선 숲속길에
들리는 빗소리는 어쩐지 좀 선뜩하지만
온몸으로 맞으며 걸어도 좋을 가랑비,
그러나 연못이 보이는 정자에 올라 앉아서
물 위로 무수히 생겼다가
금세 사라지고 다시 생겨나고 하는
동그라미들을 바라보자니
어느새 시간은 멈춘 듯
도시의 번거로운 소음도 잊고
누가 날 찾을 일도 없으니
언제 보았던가
어린시절 부르던 동요를 생각케 하는
저 동그라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이 생각 저 생각...
이윽고 나를 잊어버린다.
雲會幽蹊鵲語酸 운회유혜작어산
突然綠葉雨聲寒 돌연녹엽우성한
林亭獨坐向池水 임정독좌향지수
雨畵圓波三昧看 우화원파삼매간
오솔길에 구름 모이고 까치소리 스산하더니
갑자기 푸른 잎에 듣는 빗소리 선뜩하여
숲속 정자에 나홀로 앉아 연못 물을 보며
비가 그리는 동그라미를 넋놓고 바라본다
※ 會모일 회,
幽蹊유혜...그윽한 오솔길, 蹊좁은 길 혜,
酸산...시다, 고통스럽다, 여기선 '편치않다'라는 뜻.
畵그릴 화, 圓波원파...동그라미 물결
三昧삼매...한 가지에 골몰함.
※ 신체시(新體詩)에서는 절구(絶句) 한 수 안에
같은 글자를 두 번 쓰는 일, 즉 첩자(疊字)를
금(禁)하는 규칙이 있다. (한 구절 일곱 글자
안에서는 두 번 써도 괜찮지만)
그러나 유명한 옛 절구에서도 가끔씩 이 규칙을
어기는 예들을 볼 수 있는데,
나도 이 시(詩)에서는 그만 그 파격(破格)을 범하고
말았다. 어떤 글자를 두 번 썼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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