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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명/살며 사랑하며

어디쯤 왔을까 우리의 봄은..

  조선의 봄은 진정한 봄이다. 한반도의 봄은, 혹시나 시기를 놓칠까 1월 중순
부터 허둥대다가는 이미 오랫동안 끌어 온 겨울로 되돌아 가기도 하며 하루 걸
러 왔가갔다하는 우유부단함 속에 세월을 다 허비하고 갑자기 여름으로 송두리
째 바뀌어 버리는 그런 봄이 아니다.

  조선의 봄은 연약함이나 우유부단함이 없다. 그것은 서서히 그러나 정확히 찾
아 온다. 꽃나무들이 그 계절이 어디까지 왔나를 알려주며, 나무들은 아직 눈도

녹지 않은 이른 시절에 꽃봉오리를 머금고 터뜨린다.


  봄은 조선 땅을 서둘러 떠나기 싫어 꾸물거린다. 1월말에서 6월 초까지 계속
되고도 결코 스스로 물러나려 하지 않다가 여름비에 억지로 밀려난다.....

  명왕성의 존재를 처음 발견했다는 퍼시벌 로웰이라는 천문학자가 100년 전에
일본과 조선에 머무르며 관찰한 것들을 쓴 책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미국 위싱톤 부근의 봄과 달리, 서서히 그러나 정확히 와서 초여름 장마가 시
작하기 전까지 넉 달여를 느긋하게 있다가 간다는 것입니다. 학자의 눈이어서
그런지 비교적 정확한 서술이었다는 느낌입니다. 

  남쪽에서는 1월부터 매화가 피기 시작하여 쌀쌀함속에 피어나는 동백꽃 그리
고 개나리 진달래로 이어지는 화신(花信)이 해마다 반복적으로 우리 곁을 찾아
오고, 벚꽃이 흐드러질 때 쯤이면 무거운 옷이 귀찮을 정도로 공기마저도 사랑
을 담은 듯 훈훈해지는 봄의 절정을 맞게 되지요. 

  장마를 예고하는 초여름비에 억지로 밀려난다는 표현도 재미있지요? 내년까
지는 너무 멀다고... 조금 더 우리 곁에 있고 싶어서 찡그리는 봄의 팔자(八字)
눈썹이 보이는 듯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봄은 이렇게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제 모습을 보여
주고도 떠나기 아쉬워 하는 정든 친구와 같다고나 할까요? 때로는 갑작스런 꽃
샘 추위를 몰고와 당황케도 하지만, 그것은 친한 친구가 부리는 다정한 심술이
라고 보아 넘겨야 하겠지요.

  다정한 친구가 어디쯤 와 있는지.. 이제 창문을 열어 보아야겠습니다.
(2003. 3. 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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