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를
위하여
문정희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결별한다.
딸의 아랫도리를 바라보며
신이 나오는 길을 알게 된다.
아기가 나오는 곳이
바로 신이 나오는 곳임을 깨닫고
문득 부끄러워 얼굴 붉힌다.
딸에게 뽀뽀를 하며
자신의 수염이 때로 독가시였음도
안다.
남자들은
딸을 낳아 아버지가 될 때
비로소 자신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짐승과
화해한다.
아름다운 어른이
된다.
--*--
남자와 여자로
이루어진 세상...
남자는 자기 속에
가두어 둔
맹수가 으르렁거릴
때
그것을 달래어 눅이지
못하고
불안한
눈빛으로
서성대는 수가 적지
않지만
결혼을 하고 딸을
낳아
그 뽀얀 몸을 껴안을
때
맹수의 습성은
사라지고
비로서 여체의
신성함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생명을 준 여체의 신성함을,
영원한
고향을...
어린 딸을 껴안는
마음
참으로 맑은
물줄기를
내 안으로 끌어
들이는
일입니다.
--*--
문정희님의 시를 좋아해서 하나를 올려 보고 싶었습니다. 몇
몇 올리고 싶은 시가 있었는데,
<남자를 위하여>는 나로서는 말
하기가 조금 어렵게 느껴져 다른 것으로 올릴까 해 보았으나 자
꾸만 이 시가 뒤를 끌어
당기는 바람에 그냥 올립니다.
시를 잘 모르지만 예를 들어 어떤 시를 보았을 때, 생각하고
따져볼 겨를도 없이
마음에 닿아와, 어디선가 많이 본 귀절들
같기도 하고 혹은 내가 생각했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기도 하는
그런 낯익은 귀절들이 많게
느껴지는 시.. 나는 그런 시를 좋은
시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정희님의 작품 중에는 그런 시가 많은 것
같아서 참 좋습니
다.
한 겨울 못잊을 사람과 대관령쯤을 넘다가 폭설을 만나고도
싶고, 햇살이 눈부신 오후에 긴 머리채를
자르고 다시 불같이
사랑하고 싶고, 어린 날 오빠 팔에 매달리듯 키 큰 남자에게
매달리고 싶고, 하룻밤쯤 첼로처럼
매캐한 목소리로 허공을 긁
어 허세와 속물들을 일으켜 손바닥이 얼얼하도록 박수치게 하
고 싶은 시인..
비처럼 그대 잠속에 안겨 지상의 것들을 말갛게 씻어 내고 싶
고, 밤마다 홀로 기대어 울 수 있는 별을 키워 가슴 속 가장 깊
은
벼랑에 매달고 싶고, 사마천을 고흐를 전봉준을 고산자를 오
빠로 부르고 싶은 시인의 마음을 사랑합니다.... (2003.
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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