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도반
이 화은
눈 내린 산길 혼자 걷다 보니
앞서 간 짐승의 발자국도 반가워
그 발자국 열심히 따라갑니다
그 발자국 받아 안으려 어젯밤
이 산 속엔 저 혼자 눈이 내리고
외롭게 걸어간 길
화선지에 핀 붓꽃만 같습니다
까닭없이 마음 울컥해
그 꽃 발자국 꺾어 가고 싶습니다
짐승 발자국 몇 떨기
가슴에 품는다고 내가
사람이 아니되겠습니까
내 갈 길 다 알고 있었다는 듯
내 갈 데까지 데려다 주고
그 발자국 흔적조차 없습니다
모든 것 주기만 하고
내 곁을 소리없이 떠나가버린
어떤 사랑 같아
나 오늘 이 산 속에 주저앉아
숲처럼 소리 죽여 울고 싶습니다
** ** **
어쩌다가 짐승의 발자국을 볼 때가 있습니다.
그냥 지나치려다가
다시 한 번 돌아 보게 되지요.
발자국을 만들며 그 길을 지나간
짐승의 체온을 생각하면서
'살아 있는 일'의 무게를 느낍니다.
살아 있는 일의 외로움을 느낍니다.
언제 이곳을 지나갔을까
왜 혼자서 이곳을 지나갔을까
실상은 그렇지도 않을 짐승의 심상에
우리 자신의 외로움을 대입해 보는 것일까요..
내가 이리로 갈 것을 미리 알고서
나를 데려다 주고 흔적없이 사라진 그 어떤 사랑이
오늘 나를 목메이게 합니다....
당진 석문 방조제의 간척지에 사진을 찍으러 들어갔다가
짐승 발자국을 발견했습니다.
발굽이 둘로 갈라진 것을 보아
노루나 고라니의 발자국인 것 같았습니다.
아침이나 간밤에 찍힌 것 같이 생생했고..
주위에도 여러 군데
다양한 선명도의 발자국이 많은 것을 보면
바다가 막히자 새로운 주인들이 일찌감치
이 땅을 덥히고 있었음을 알았습니다.
개펄이던 이곳에 이렇게 드넓은 초지가 형성되어 있고
군데군데 숲을 이루어
새들과 네발 짐승들이 깃들어 살고 있습니다.
새만금 공사를 그렇게 반대하는 분들도 많던데
이렇게 넓은 새 땅이 새로 생기고
짠물이 가신 땅에
새로운 생명들이 서식하게 되는 이런 변화가
신선하게만 느껴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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