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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詩)의 속살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 이 상 국 -

 

오늘은 일찍 집에 가자
부엌에서 밥이 잦고 찌개가 끓는 동안
헐렁한 옷을 입고 아이들과 뒹굴며 장난을 치자
나는 벌 서듯 너무 밖으로만 돌았다
어떤 날은 일찍 돌아가는 게
세상에 지는 것 같아서
길에서 어두워지기를 기다렸고
또 어떤 날은 상처를 감추거나
눈물자국을 안 보이려고
온몸에 어둠을 바르고 돌아가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일찍 돌아가자
골목길 감나무에게 수고한다고 아는 체를 하고
언제나 바쁜 슈퍼집 아저씨에게도
이사 온 사람처럼 인사를 하자
오늘은 일찍 돌아가서
아내가 부엌에서 소금으로 간을 맞추듯
어둠이 세상 골고루 스며들면
불을 있는 대로 켜놓고
숟가락을 부딪치며 저녁을 먹자

 

    ***     ***     ***

 

우연히 마주친 이 시를
내리 마지막 줄까지 읽고서 돌아서다가

 

무언가가 마음을 붙잡는 것 같아
다시 시 앞으로 다가 앉았다

 

나는 어떠했던가

 

상처에 어둠을 바르느라
늦게 돌아가던 일이 언제던가

 

다정한 이들이 불을 밝히고 기다리는
그곳으로 어서 돌아가 편히 눕고 싶지만
괴로움은 서로 나누어야 작아진다지만

 

사랑하는 사람들을 불안하게 만들기 싫어
걱정거리를 내 속으로만 꼭 걸어 잠그며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서성이던 기억이 떠오른다

 

혹시나 내 표정에 내 눈빛에
속마음이 비치지는 않을까 염려하면서..

그런 날일수록 아내는 왜 그리 다정하던지...

 

웬만한 가장(家長)이라면
이런 기억쯤은 누구나 있을 법하다

 

삶이 언제,
나이들어 간다고 만만해지던가

 

사소한 일상의 모습들에
따뜻한 옷을 입힌 시 한 줄 한 줄에
왠지 눈물자국 같은 것이 보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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