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인터넷을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한 것은 막 2000년이 되었을 때였다. 넘쳐나는 정보의
양에 감탄을 거듭하면서, 카페에 가입하여 글을 올리면 아는 이 모르는 이들의 댓글이 올라오
고 나는 또 다시 답글을 다느라 고심하기도 하였다.
맨 처음 가입한 곳은 모 일간신문의 커뮤니티였는데, 닉네임을 정하라고 하여 무엇으로 할
까를 생각하다가 마침 창밖에 저녁놀이 아름답게 물들고 있는 것을 보고, ‘그래 저녁놀이다’라
고 했던 일이 기억에 새롭다.
또 다른 사이트에서도 필요할 때마다 나의 닉네임은 ‘저녁놀’이 되었고, 이후 가까운 친구들
도 나를 저녁놀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그런데 나의 아내를 가입시킬 일이 생겨, 인터넷 사용을
잘 할 줄 모르던 그를 대신하여 내가 가입을 시켜주면서 그의 닉네임을 정해야 했다. 닉네임이
라는 것이 별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번 지으면 오래 사용하는 것이니 제법 이름 짓기에 정성
이 들어가는 것이었다.
내가 저녁놀이므로 그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좀 신선한 기분이 드는 ‘새벽’이라는 단어를 넣
어서, ‘새벽별(曉星)’로 정하였다. 신선한 새벽별을 따뜻한 저녁놀이 늘 다사롭게 보듬어 준다
면 참으로 보기도 좋으련만, 내가 평소에 얼마나 아내에게 잘 해주었는지에 대해서는 늘 자신
이 없다.
아내는 나와 동갑으로 작년에 회갑이 지났는데 아직도 젊다! 나처럼 세상사에 찌들지 않고
순진(?)한 마음을 아직까지도 지켜온 덕분일 것이다. 42년 전에 나와 처음 만나고, 결혼하여
살아온 지가 금년으로 37년이 되었다! 돌아보면, 철없을 때 결혼하여 고생도 어지간히 시켰건
만, 아직까지도 나와 결혼한 것을 후회하는 눈치는 없는 것 같으니 나는 그저 고마울 뿐이다.
弱歲緣分貌若花 어린 시절 부부인연 꽃 같던 그 얼굴
前年苦樂尙今嘉 울고 웃던 지난 일들 외려 아름답구려
餘生但願互親愛 남은 생 오로지 서로 사랑하기를
歡似曉星儂夕霞 당신은 새벽별처럼 나는 저녁놀처럼
얼마 전, 푸치니의 오페라 라보엠에서 주인공 로돌포와 미미의 대화중에 저녁놀과 새벽별
이 나온다는 말을 어디서 듣고서, 벼르고 있다가 지난 주말에 라보엠 DVD를 샀다. 그 유명한
‘그대 찬 손’ 과 ‘내 이름은 미미’ 그리고 ‘무제타의 아리아’를 듬성듬성 찾아내 듣고서는 바로
마지막 부분을 더듬어... 드디어 그 부분을 찾아냈다.
19세기 빠리의 라틴 쿼터에 모여 살던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야기, 시인 로돌포와 수놓는 아
가씨 미미는 같은 건물의 다른 층에 살며 헤어지고 만나고를 반복하던 연인들. 미미는 자기가
진정 사랑한 사람이 로돌포였음을 깨닫게 되고, 마지막 병들어 죽기 전에 둘이 나눈 대화...
로돌포 : 아 미미, 나의 아름다운 미미 (Ah Mimi, mia bella Mimi !)
미미 : 저 아직 예쁜가요? (Son bella ancora?)
로돌포 : 새벽처럼 아름다워 (Bella come un'aurora.)
미미 : 비유가 잘못 되었네요 (Hai sbagliato il raffronto.)
저녁놀처럼 아름답다고 해야죠 (Volevi dir : bella come un tramon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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