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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독서

 

  옛글을 읽을 때마다 나는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

든 이들의 모든 종류의 희비(喜悲)와 갈등(葛藤)들이 이미 하나도 빠짐없

이 선인(先人)들이 써놓은 옛 책에 기록되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현대의 소설가가 아무리 새로운 스토리를 지어 내더라도, 그것은 이미

2000여 년 전의 책 <사기(史記)>라든가 또는 비슷한 종류의 책 속에 모

두 들어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정벌하고 복속하고 속고 속이고 배신하

고 복수하는 인간의 속성(屬性)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할 리가 없기

때문이다.

 

  조용한 밤, 침대머리의 등(燈)을 켜놓고 옛 책을 읽을 때가 나의 하루

중에서 제일 달콤한 시간이다. 늦바람에 날 새는 줄 모른다더니, 나야말

로 옛 공부의 재미를 늦게나마 알게 되어 그야말로 하루가 24시간이라는

것이 안타까울 때가 많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요즘은 눈이 쉽게 따갑고

피곤하여 진다. 그렇게도 좋던 눈이었는데...

 

  몸도 마음도 젊었던 예전엔 왜 이런 생각이 안 들었을까? 기억력도 힘도

좋던 시절에, 읽고 싶은 것들을 밤새 읽어 정리하고, 관심이 가는 내용들

을 소화하기 위한 전문적인 소양(素養)을 위해 이것저것 진작에 열심히 배

워 두었더라면 얼마나 좋을까.

 

  춘추 시대 진(晉) 나라의 사광(師曠)은 <젊어서 배우는 것은 해가 중천에

떠 있는 것과 같고, 늙어서 배우는 것은 밤에 촛불을 든 것과 같다>라고 했

다. 훌륭한 비유라고 생각된다.

 

  늦게나마 옛 책의 재미를 알아, 오늘밤도 나는 잠들기 전에 머리맡에 놓

아둔 옛 책을 펼친다. 불 좀 끄라고 나를 채근하는 아내가 <늙어서 배우는

맛이 더욱 값지다(老學其味愈眞)>는 것을 모르지는 않겠지만, 잔소리 들어

가며 아슬아슬하게 책장을 넘기는 그 맛 또한 정말 좋아!

 

 

           讀書                       독서

 

      少年無熱讀       젊어서 책 열심히 읽지를 않아

      老學味尤眞       나이 들어 공부 맛이 더욱 좋아라

      亂世人間事       난세의 인간사가 담겨져 있는

      攤書閱到晨       책 펼쳐 읽느라고 새벽 가깝네

 

      故事津津展       이야기가 진진하게 전개될수록

      焦心漸漸增       궁금증은 점점 더 늘어 가는데

      瑣言妻睡起       잠 깬 아내 일어나 잔소리하며

      催我速消燈       어서 빨리 불 끄라고 재촉을 하네

 

 

* 少年(소년)... 젊은 시절

* 無熱讀(무열독)...독서를 열심히 하지 않아

* 味尤眞(미우진)... 맛이 더욱 좋다, 尤 더욱 우

* 攤書(탄서)... 책을 펼치다, 攤 펼 탄

* 閱到晨(열도신)... 새벽까지 읽다, 閱 읽을 열, 晨 새벽 신

 

* 故事(고사)... 옛 일, 옛 이야기

* 津津展(진진전)...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다, 展 펼 전

* 焦心(초심)... 마음을 졸임

* 漸漸增(점점증)... 점점 늘어가는데

* 瑣言(쇄언)... 잔소리

* 妻睡起(처수기)... 아내가 잠깨어 일어나

* 催我(최아)... 나를 재촉하다, 催 재촉할 쵀

* 速消燈(속소등)... 빨리 등을 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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