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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경칩 (驚蟄)

 

메타 세콰이어

높은 가지 위에서

어치가 운다.

 

어치의 깃털 색깔이

어제보다 더 선명하다.

 

나도

홑겹 버버리를 입고

교보문고로 간다.

 

계간 시지(詩誌)

시안(詩眼) 봄호를 뽑아 펼치니

 

어느 시인의 아들이

파리 한 명 잡았어

라고 했다는 구절에

 

나는 문득 오래 전

마석 공원묘지에서

 

지현이가

아빠 여기 사람 심는 데야?

라고 묻던 그날

 

그 나른하던

황톳빛 봄바람이 생각난다.

 

경칩은

며칠 전이었지만 나는

오늘부터 봄이다.

                  (2008 년)

 

       *  *       *  *

 

나의 옛 글들을 들추어보다가

6년 전 이맘때 썼던

윗 글이 눈에 들어왔다.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어치가 요란히 울던데

 

이 글을 쓰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고

 

너덧살 딸아이가 

여기 사람 심는 데야? 라고 묻던

그날도 참으로 생생한데

 

딸아이는 이제

네 살 배기의 엄마가 되었고

 

내가 아끼던 계간 시지(詩誌)

시안(詩眼)은 작년에 아쉽게도 폐간되었고

 

시간은 무던히도 흘러갔건만

 

마석의 그 황톳빛 봄바람은

아직도 경칩 어름이면

내게 불어오고 있다.

 

 

         驚蟄                             경칩

 

驚蟄剛過不怯風       경칩 갓 지났으니 바람도 겁이 안나

兒孩携手出江東       어린 아이 손잡고 강동으로 나아가

樹禽聲下此身在       나무 새소리 아래 이 몸 서 있자니  

春始啓玆吾眼中       나의 봄은 이제 막 시작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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