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구경하러 갈 때
나는 늘 남원(南原)에 들러
지리산에 올랐다가
구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했다.
남원 하면 남녀노소
누구나 춘향전을 떠올리듯이
우리나라에서 스토리의 고장으로서
이곳만큼 유명한 곳도 많지 않을 것이다.
섬진강의 지류인
요천(蓼川)이 아름답게 흐르고
그 옆으로 자리 잡은 광한루원(廣寒樓苑).
광한루 앞에는 사진사(寫眞師)가 있는데
알록달록한 한복을 준비해 놓아
이도령과 춘향이나 된 듯
광한루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주었었다.
20년도 더 지난 것 같다.
핸드폰 같은 것은 상상도 못한 시절.
아내와 한껏 포즈를 취하며
한복을 입은 이몽룡과 성춘향이 되어
그때 찍었던 폴라로이드 사진이
지금도 빛이 많이 바랜 채
우리 집 서가에 있다.
지난 연휴에 나의 친구 김원장(金院長)이
부부동반으로 여행 중에
남원에 들른다고 했다.
나는 사진 생각이 나서
지금도 광한루에 사진사가 있다면
번거롭더라도 꼭 한복을 입고
사진을 찍으라고 일러두었더니
감을 잡은 김원장은
멋지게 부채를 들고
부부 사진을 찍어 올렸다.
한복을 입은 부부의 얼굴이
실제보다 30년은 젊어 보인다.
알록달록한 한복에
칠보(七寶) 족두리까지 쓰신 모습이
달나라의 선녀
항아(姮娥)가 내려 오셨나보다.
廣寒楊柳映明暉 광한양류영명휘
紅綠佳人窈窕菲 홍록가인요조비
必是姮娥來下降 필시항아내하강
金公傍立笑翅衣 김공방립소시의
광한루 버들에 밝은 햇빛 비치는데
홍록 옷 어여쁜 이 자태 향기롭구나
틀림없이 달에서 항아 선녀 내려와
김공 옆에 날개옷 입고 웃고 서 있도다.
(2020. 10. 1.)
* 姮娥항아...달에 산다는 선녀,
翅衣시의... 날개옷, 翅날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