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출근길 언주로(彦州路)의 가로수는
은행나무가 주종(主種)이어서
가을이면 샛노란 풍경을 연출하는
장관(壯觀)을 이루어 왔는데
작년인가 재작년인가부터
이맘때쯤 되면
은행나무 사이사이로 마치
흰 솜사탕을 수북히 담고 서 있는 듯,
혹은 겨울철 내린 눈(雪)을
담뿍 이고 서 있는 듯
녹색 이파리 위에 희디 흰 가루를 이고
아름답게 흔들리고 있는 나무들,
바로 이팝나무다.
언제 소식도 없이 이 나무들을
가로수로 심었는지.
나는 매일 출근 길에 마치
오케스트라의 지휘자가
단원들의 박자를 세 듯
가로(街路) 양쪽으로 나타나는
이팝나무의 수를 세면서 간다.
호호백발 정년이 가까운 단원
이제 막 희끗희끗한 신입단원
어쩌다가 신호에 걸려
바로 나무 아래에 서면
네 줄로 술처럼
늘어진 흰 이파리를 보다가
뒷 차의 빵빵 소리를 들으면서
앞으로 한 달 가량은 출근하면서
이 꽃을 보는 맛이 삼삼하겠다.
이 나무의 학명(學名)
키오난투스 레투사(Chionanthus retusa)는
Chion(하얀 눈) 과 Anthos(꽃)의 합성어라니
멀리서 보면
‘하얀 눈을 이고 서 있는 듯하다’는 말이
미상불(未嘗不) 틀리지는 않은 것같다.
흰 꽃잎이 네 갈래로 길게 늘어져
하얀 실로 만든 술이 늘어진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한자(漢字) 이름은
유소수(流蘇樹)라고 하기도 하고
입하목(立夏木) 또는 육도목(六道木)이라고 하는데
유소(流蘇)는 깃발이나 가마, 옷 등에
매듭짓게 꼬아서 다는 술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이름이 제일 아름다워
나는 유소수(流蘇樹)라고 부르고 싶다.
옛날 우리나라가 궁핍하여
많은 사람들이 굶던 시절
이 나무의 꽃들이 흰 쌀을 연상케 하였다는
아픈 이야기도 전해지지만
무엇보다도 출근길 양쪽에서
하얗게 흔들리며 반겨주는 이 나무들 덕분에
나는 또 다시 겁도 없이
더운 여름을 맞을 수 있을 것 같다.
流蘇樹 유소수
葉先綠後華開素 엽선록후화개소
爽與通常花草度 상여통상화초도
錯視陽春白雪凇 착시양춘백설송
窮荒使憶豊年樹 궁황사억풍년수
이팝나무
잎사귀 먼저 푸르른 후에 흰 꽃이 피니
꽃 먼저 피는 화초계의 법칙에 어긋나도다
한 봄에 마치 겨울 눈 상고대 보는 듯 하고
궁핍했던 시절 풍년 쌀 연상케 하는 나무
* 華開素화개소… 꽃이 하얗게 피다, 華꽃 화,
素흴 소, 爽與상여…~에 어긋나다, 爽어긋날 상, 상쾌할 상,
花草度… 화초계의 법도,
白雪凇백설송… 눈 온 후의 상고대, 凇상고대 송,
상고대… 나무나 풀에 내려 눈같이 된 서리,
使하여금 사, ~로 하여금 ~시키다, 憶생각할 억, 추억할 억,
窮荒궁황…흉년으로 먹을 것이 없는 어려운 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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