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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방우 (訪友)

   尋胡隱君           심호은군     

 

  渡水復渡水        도수부도수

  看花還看花        간화환간화  

  春風江上路        춘풍강산로

  不覺到君家        불각도군가 

 

     호선생 댁을 찾아서

 

시냇물 건너 걷다가 또 건너고

꽃 보면서 걷다가 또 꽃 보면서

봄바람 맞으며 강변 길 걷다 보니

어느새 호선생댁에 다 와버렸네

 

* 건널 도다시 부깨달을 각이를 도.

 

  원말명초(元末明初)에 살면서 2,000여 수의 시를 남긴

고계(高啓)라는 시인의 시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50~60년 전에는 전화가 귀했지만,

옛날에는 그야말로 편지에만 의존했으니, 연락도 미리 못

하고 벗을 찾아가는 일이 다반사였을 것이다. 찾아가 만났

을 때의 놀라움반가움은 얼마나 컸을 것인가.

 

  또한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하였더라도, 누구를 탓할 일

도 아니고, 좀 기다려보던지 아니면 아쉬운 발 길을 돌리

기도 하던 것이 옛 사람들의 사귐이었다.

 

  雪色白於紙     설색백어지   
  擧鞭書姓字     거편서성자   
  莫敎風掃地     막교풍소지
  好待主人至     호대주인지

 

내린  색깔 종이보다 더 희길래

채찍 들어 내 이름을 써놓고 가니

바람 눈 위에 쓴 글씨 지우지 말

 주인 올 때까지 기다려주려무나

 

* ()~ …~보다,  擧鞭거편채찍을 들다,

  (막교)~ …~에게 ~하지 말도록 하다.
  기다릴 대,

 

 고려의 문호 이규보의 시이다. 위의 고계(高啓)가 친구를

만났는지 못 만났는지는 독자가 상상할 내용이지만, 이규

보는 만나지 못하고, 대신 쌓인 눈 위에 자기 이름을 써

놓고 돌아섰다.

 

  내가 왔었다는 것을 벗이 알면, 못 만난 아쉬움이라도

반으로 줄어들 테니, 바람에게 글씨를 지우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에서 정치인이 아닌 시인다운 면모가 드러

난다.

 

  이러한 옛 사람의 벗사귐을 주제로 나의 벗이 시 한수

를 지어 보냈다.

 

   越山渡水到君家    월산도수도군가 

   扉閉空牀待菊花    비폐공상대국화

   瑟瑟寒風何許在    슬슬한풍하허재  

   天涯知己亦看霞    천애지기역간하

 

산 넘고 물 건너 그대 집에 왔더니

문 닫히고 빈 집에 국화만 맞아주네

찬 바람 쓸쓸한데 어디에 가셨는고

그대도 지금 저 붉은 노을 보고 있는가

 

* 越넘을 월, 渡건널 도, 到이를 도, 扉사립문 비, 牀침대 상,

  待기다릴 대, 何許하허=何處=어디에,

  天涯知己천애지기멀리 있어도 마음이 통하는 친구.

 

  이 시()를 내게 지어 보낸 벗도, 옛 사람들의 느리디 느린

그러나 정겨운 만남의 아름다움을 새기고 있었나보다. 내가

비록 저 시 속의 대상은 아니지만, 마음이 통하였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있나. 벗의 운자(韻字) - - 霞를 그대로 쓴 화

운시(和韻詩)를 써보냈다.

 

  迢迢江路向君家     초초강로향군가   

  籬落紛飛蝶弄花     이락분비접농화   

  積阻相思情不耐     적조상사정불내   

  遙望驢背醉紅霞     요망려배취홍하

 

아련한 강 길따라 그대 집을 향해 가네

울타리 나비 팔랑팔랑 꽃들을 희롱하고

오래 못만나 보고싶어 그리운 정 못참아

나귀 등에서 멀리 보며 붉은 노을에 취하네

 

* 迢迢초초먼 모습, 籬落이락울타리, 蝶나비 접,

  積阻적조오랫동안 서로 소식을 주고받지 못함,
  相思상사서로 그리워 함, 耐참을 내, 遙멀 요,

  驢背여배나귀 등,  霞노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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