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달이 끼어서인지
이른 추석에 햇살이 따갑다.
늦장마로 늘 구저분하더니
마침 올 추석은 날씨가 맑아 다행이다.
왼쪽이 약간 깎인 듯한 열나흘 달(月),
절구 위로 둥글게 구부러진
옥토끼의 커다란 얼굴과 두 귀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 모습
조금도 변함없건만
우리의 지구는
빙하가 마구 녹아내리고 있다니
갑자기 한 줄기 섬뜩한 기분도 든다.
아내는
달이 서쪽으로 기운 밤 3시까지
또닥또닥 지글지글
아침 차례상에 올릴 음식을 준비하고
나는 책을 보다가
공연히 왔다갔다 하며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묻기만 하는
한가위 이브.
돌아가신 부모님은
제사(祭祀) 전에 늘 꿈으로 먼저 오시니,
음식 장만 끝나길 기다려
함께 서둘러 늦은 밤
잠자리에 든다.
秋夕 추석
暑去淸光最吉辰 더위 물러가고 맑은 빛 제일 좋은 날
肉魚棗栗祭香新 차례 음식 앞에서 향냄새도 새로워라
夜來晃朗滿明月 밤들자 휘영청 밝은 보름달 떠오르니
微笑下看先兩親 빙긋이 내려다보는 돌아가신 양친 얼굴
* 暑去(서거)... 더위는 가고, 暑 더울 서, 去 갈 거
* 吉辰(길신)... 좋은 날, 吉 길할 길, 辰 날 신
* 肉魚棗栗(육어조율)... 고기와 생선과 대추와 밤, 제사 음식을 말함
* 晃朗(황랑)... 달이 휘영청 밝은 모습, 晃 밝을 황, 朗 밝을 랑
* 下看(하간)... 내려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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