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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漢詩)의 맛과 멋

다보탑 (多寶塔) 불교의 경전인 법화경(法華經)에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온 세상의 부처님과 제자들을 모아놓고 영취산(靈鷲山)에서 설법하실 때, 그 옆에서 탑(塔)이 하나 솟아나면서, 과거불(過 去佛)로서 동방 보정세계(寶正世界)의 부처님인 다보여래(多 寶如來)의 목소리가 울려나오며, 석가모니의 설법이야말로 진리라고 증명하였다고 한다. 불국사 대웅전의 앞마당에 서쪽에는 석가탑(釋迦塔)이 동쪽 에는 다보탑(多寶塔)이 좌우로 우뚝 서 있다. 오늘은 다보탑 이야기를 좀 해보려 한다 단순한 구도로 날렵한 비례(比例)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석가탑과는 달리, 다보탑은 단단한 화강암을 마치 부드러운 흙으로 빚어 만든 듯 정사각형, 팔각형, 원의 모습들을 다채 롭게 섞어서 만들어서, 그 화려한 아름다움은 세상 그 어디서 도 찾아보기 .. 더보기
배롱나무(木百日紅)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를 방불(髣髴)케 하는 월출산(月出山) 봉우리 바라보며 비 그친 저 산길을 홀로 걸어봅니다. 프로스트의 을 암송하면서.. 얼마 안가 또 다시 몰려온 월출산 먹구름에 비가 후두둑 시작하기에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산봉우리는 운무(雲霧)에 흐릿하게 잠겨있는데, 이른 아침 우중(雨中) 정취가 너무 좋아서 빗방울 바라보며 하염없이 앉아 있습니다. 우라노스(Uranos)와 가이아(Gaia)가 운우지정(雲雨之情)을 나누는 듯 주르륵 주륵 빗방울 소리는 흥겹기만한데, 비에 못견뎌 배롱나무 꽃송이들은 잔디 위에 수북이 떨어져 붉게 깔려 있네요. 비록 이제 가지와 작별하고 떨어졌지만 여름의 막바지까지 최선을 다하여 붉게 피어 있었노라고.. 나의 의무를 다하였노라고 뿌듯이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 더보기
대장부 (大丈夫) 5살 때부터 세종대왕의 총애를 받았던 김시습은 수양대군의 왕위 찬탈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머리깎고 중이 되어 방랑생활을 하였는데 그가 지은 詩句에 이런 것이 있다. 削髮逃塵世 삭발도진세 存髥表丈夫 존염표장부 머리 깎고 속세에서 도망하지만 수염은 남겨서 장부임을 표하네 장부는 대장부를 말함이겠고 대장부는 한 번 품은 뜻을 저버리지 않고 절개를 지키는 남자를 일컬음이겠다. 白頭山石磨刀盡 豆滿江水飮馬無 男兒二十未平國 後世誰稱大丈夫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닳고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말랐네 남아 이십에 나라 평정하지 못하면 후세에 누가 대장부라 하리요 세조 때 남 이(南 怡)장군이 여진족을 정벌하고 돌아오며 지은 시이다. 1~2句의 사나이의 기개(氣槪)가 읽는 사람을 압도한다. 당당한 기개를 품고 큰 일을 .. 더보기
하운 (夏雲) 春水滿四澤 언 땅 녹은 봄 물이 못마다 가득하고 夏雲多奇峰 여름 구름 기이한 봉우리 많이 만드네 秋月揚明輝 가을 달은 밝은 광채 드높이 비추고 冬嶺秀孤松 겨울 영마루 소나무 한 그루 빼어나네 동진(東晉)의 시인 도연명(365~427)의 5언 절구(絶句) 이다. 음미하며 읽으면 마치 달력의 그림을 넘기듯이 춘하추동의 모습이 간결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려져 있다. 이 시를 위아래로 읽으면 春-夏-秋-冬 (봄-여름-가을-겨울) 水-雲-月-嶺 (물-구름-달-고개 ; 자연물, 명사) 滿-多-揚-秀 (가득-많은-높은-빼어난 ; 형용사) 四-奇-明-孤 (넷-기이한-밝은-외로운 ; 관형어) 澤-峰-輝-松 (못-봉우리-빛-소나무 ; 자연물, 명사) 이와 같이 읽혀 원시(原詩)의 네 구(句)가 동시에 대구(對句)를 이루는 멋.. 더보기
당진 (唐津) 충청남도는 해안선이 복잡하여 바닷물이 땅 깊숙이 들어온 곳이 많아 서산, 당진 부근을 통틀어 고려때부터 내포(內浦)라고 불러왔다. 서울에 살아온 내가 어릴 적 두루미를 본 일은 동물원에서 본 기억외에는 없는데 초등학교 때 담임선생님은 당진에서 전학온 아이의 고향이 두루미가 많은 고장이라고 소개하셨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당진’하면 두루미가 먼저 생각나니 어린 아이를 가르칠 때는 경외감(敬畏感)을 가지고 정성껏 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각설하고, 그 ‘당진’에 나의 벗이 출근을 하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명의(名醫)'라는 프로그램에도 나온 실력과 인품을 겸비한 벗이. 대학의 부총장과 의료원장을 역임하고 정년 퇴직을 하고서도 일을 하다가 이제 좀 쉬려던 차에 아직도 건강무쌍한 그를 그냥 두지 않고 당진으로.. 더보기
유튜브 지금 이 세상엔 놀랄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유튜브(youtube)는 그야말로 경이로운 발명품이다. 세상 돌아가는 온갖 뉴스와 정보, 사는데 필요한 요리법, 눈오는 산속 에서 혼자 야박하는 영상, 웃음을 자아내는 스포츠 실수 장면, 음식을 엄청 앞에 모아놓고 다 먹고야 마는 장면, 이런 것에서 시청각적으로 만족을 얻는 이들이 있어서 번성중이다. 귀신 나올 것 같은 오래된 폐가를 여자 혼자의 힘으로 리모델링하는 장면, 녹슬어 버려진 오토바이나 권총을 다시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만드는 영상 은 보는 사람이 눈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조회수가 높아지거나 follower가 증가하면, 제작자는 돈을 받을 수가 있기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개인방송국을 차릴 수도 있고, 안방에 앉아서 세계의 뒷골목.. 더보기
병실 ( 病室 ) 배가 아파 응급실에 와 갑자기 입원하려니 병실이 없어서 대기하다가 급한대로 다인실로 올라왔다. 소아과 병실에선 돐도 안된 어린 것들이 계속 엄마 엄마 울고 있으니 나도 어린 손자생각에 눈물이 나오려고 한다. 집에서 엄마 품에서 편히 크다가 옴치고 뛸 수도 없는 좁은 병실에서 얼마나 힘이 들면 목이 쉬도록 울까. 내가 있는 내과 병실에선 꼬부라진 하얀 할아버지 둘이 이거 해달라고 또 저거 해달라고 마구 소리친다. 어떤 땐 멀쩡하다가도 또 어떤 땐 치매같기도 하고. 장년의 남자 하나가 어디가 아픈지 새로 들어와 아내에게 말할 때마다 신경질을 부린다. 자기가 아파서 아내도 함께 고생을 하는 것인데 왜 저리 아내에게 화만 내며 매몰차게 몰아대는지. 내 옆에는, 병든 늙은 아버지를 모시고 시골에서 올라와 자기의 .. 더보기
병중 (病中) 주말을 잘 보내고 일요일 밤 잠들기 전에 갑자기 상복부 통증이 오는데 보통의 소화불량과는 정도가 다르다. 급히 응급실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했더니 급성 담낭염(膽囊炎)이라 ㅠ 오래 전부터 내 담낭에 작은 돌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결국 느즈막히 사단(事端)을 일으킨 것이다. 수술을 받고 잘 회복되었지만 친구는 ‘쓸개없는 놈’이라고 놀린다. 그렇군. 병실에서의 하루는 지리하기도 하고 빨리 가기도 한다. 낮에도 잠이 오는가 하면 한 밤중에도 눈을 뜨고 이 생각 저 생각… 고열(高熱)과 복통으로 죽을 병인가 겁도 났지만 내 몸이 휴식이 좀 필요하다고 지르는 소리가 얼핏 들린 것 같다. 통이 트나 해서 창을 바라보면 아직도 아니고 또 보면 아직도 아니고.. 어느새 잠이 들었다가 새벽에 버릇대로 침대 왼쪽을 .. 더보기